[김진영 목사님 설교문] 서로 사랑 하자
by 김진영목사님 | 17.11.04 02:39 | 2,542 hit




성경 ; 요한일서 4;7-11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 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로 시작 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서로 사랑 하자”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더욱 굳게 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 된 것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입니다. 미움이 없는 곳은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있으며 화평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곳은 미움이 있으며 고통이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신군부 시대의 삼청교육대를 생지옥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몇 년 전 뉴질랜드의 T.V.에서 러시아의 육군 훈련소가 생지옥과 같다고 소개를 했습니다. 삼청교육대와 러시아의 육군 훈련소에서 온갖 체벌과 구타로 지나친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생지옥이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지옥을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쉽게 설명을 한다면 사랑이 없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호화롭게 살던 부자가 죽은 다음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부자가 지옥의 불 못 속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며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호소를 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주소서” 그러나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거절한 자들은 사랑과는 완전히 격리된 곳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함으로 죄를 용서 받지 못하고 죽은 자 만이 경험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세상의 삶의 현장에서,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때가 있습니다. 


가정은 삶과 믿음의 기초 단위입니다. 가족 간에 사랑이 있으면 좋은 안식처로써 행복을 누리는 천국의 모형이 될 것 입니다. 그러나 가족 간에 사랑이 없으면 좋은 집에서 고급차를 타고 값비싼 옷을 입고 고급요리를 먹는다고 해도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안식처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가족 간에 미움만 싸이게 됨으로 지옥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생업의 현장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일하고 있는 생업의 현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없으면 바로 그곳에서 지옥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와 성도 사이나, 성도와 성도 사이에 사랑이 식어지면 서로가 믿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불평과 미움이 싸여 교회에서 맡은 직분을 외면하며 시계추와 같이 왔다 갔다 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지 모릅니다. 사랑이 식은 교회에서는 교회 안에서도 지옥을 맛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곳에는 어느 곳이나 기쁨이 있으며 평화가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생기가 넘칩니다. 일에 의욕이 생깁니다. 짜증스럽든 교회 일에도 기쁨으로 봉사하게 됩니다. 사는 맛이 있습니다. 막혀있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느 곳을 막론하고 사랑 이상 귀한 것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이라고 합니다. 사랑장의 맨 끝 절인 13절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했습니다. 사랑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귀하고 중요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 7절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는 “하나님은 사랑이 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귀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마음속에만 간직하거나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할 때 비로소 사랑의 진짜 가치를 나타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말씀으로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과 사랑의 증거를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확실히 증거 해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고 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요한일서 3;10 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의를 행하지 않는 자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자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속하지 않은 마귀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사랑이 있어야 하며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헬라 말로는 사랑을 네 가지로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에로스는 이성간의 사랑이며, 필 레오는 우정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혈육 간의 사랑은 스톨게라고 말합니다. 이상 세 가지의 사랑은 자연적으로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에서 언급하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으로써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미운 사람이나,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는 사람이나, 원수 까지도 사랑으로 감싸주는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에로스 사랑과 필레오 사랑, 그리고 스톨게 사랑은 자연적으로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사랑이지만 아가페 사랑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사랑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아가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아가페 사랑으로 서로 사랑 할 수가 있겠습니까?


*첫째로 성령 안에서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라야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에로스 사랑과 필레오 사랑, 그리고 스톨게 사랑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새사람으로 거듭나야 온전한 사랑인 아가페 사랑을 깨닫게 되어 실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고 하셨습니다. 새 계명은 성령 안에서 거듭나야 순종 할 수 있는 계명입니다. 누구든지 교만과 자아를 죽이고 마음을 비워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기만 하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오시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죄 중 에서 살아온 죄의 성품은 죽고 새로운 성품으로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성도 간에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야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났을 때는 영적으로 갓난아기입니다. 어린아이는 사랑을 받고, 체험하고,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어린 시절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으므로 사랑의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롬 5;5) 절 말씀에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다” 고 했습니다.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받으면 마음속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으로 남을 용서 할 수 있고 사랑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면 남을 용서 하지 못하며 미운 사람이 많아 교회에도 가기 싫어집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위선자 같이 보입니다. 자기 스스로 적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세상이 점점 좁아집니다. 


세상을 계속해서 좁혀 나가면 결국 자신만 고독해지고 비뚤어지고 피해망상증에 걸리게 됩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어 만족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끝내는 하나님을 원망 하거나 믿지 않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 사함 받은 확신이 없고 구원 받은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4;47절에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더러워진 우리 한 사람한사람의 모든 죄를 이미 용서 해 주셨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처럼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남의 잘못을 용서하고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나에게 잘못한 자라고 해도 주님의 사랑으로 식사에 초대하여 함께 음식과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합하여 기도드리면 서로 용납하게 되며 성령 충만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날 서로 사랑하지 못함으로 인간관계가 잘못되어 교민사회도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까?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부터 풀어 나가야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과,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의 이름을 기도수첩에 기록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진실로 그들이 잘 되기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해도 포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전적으로 주님에게 맡기면 성령님께서 말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막히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막히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관계가 열리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속에 들어오셔서 인격과 삶을 지배하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했습니다. 사랑은 성령의 은사 중에서 가장 큰 은사이며 모든 은사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모든 은사의 사용 방법이 바로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은 성령의 은사들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14;1절에 “사랑을 따라 구하라”는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도 그 은사들을 사용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성령의 은사에는 예언과 방언, 지혜와 지식의 말씀, 병 고치는 은사와 능력 행함, 영분별, 방언 통역 등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큰 은사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의 기초 위에 은사를 받아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은사를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사랑에 기초를 두지 않고 성령의 은사를 받았거나, 받은 은사를 사랑에 바탕을 두지 않고 사용하면 영적 교만에 빠지게 되어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영적 교만에 빠지게 되면 끝내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사랑은 마치 엔진의 윤활유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승용차의 엔진이라고 해도 엔진오일이 없는 상태에서 차를 달리면 그 차의 엔진은 망가지고 맙니다. 교회 공동체의 문제는 재정이나 은사나 프로그램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부족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에는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교역자는 교만해지며, 성도들 상호간에 화평이 없으며, 교회의 일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기쁨으로 동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짜증이 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교회의 일을 피하고 싶어집니다. 교회는 회개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사랑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모인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왜 사랑이 식게 되는 것입니까? 처음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을 때에는 교회에서 무슨 일이든 기쁨으로 감당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혼자 바보짓을 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나기 시작하며 교회 일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왜냐 하면 모든 죄를 자복하고 예수를 믿으면 지은 죄는 모두 용서받지만 옛 성품인 죄의 성품은 한꺼번에 모두 씻겨 지지 않기 때문에 죄의 성품이 다시 고개를 쳐들면 사랑의 은사를 실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처음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을 때의 그 감격과 기쁨으로 돌아 가야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11;29)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성품인 온유와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나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 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남을 섬기는 자세로 자신을 낮추어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모든 삶을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 성령님께서 죄의 성품을 계속해서 씻겨 주실 것이며 교만을 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성품입니다. 


이스라엘은 교만 때문에 바벨론에 의해 망했습니다. 그리고 교만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들은 교만 때문에 평화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폐망의 선봉이라고 하셨습니다. 교만은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사랑의 기초단위인 가정에 사랑의 보화를 주셔서 그것을 잘 가꾸어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가족 간에 서로 사랑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화가 있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서로 대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평강과 안식을 누리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이나 부모와 자식 간, 그리고 형제간에 만나면 부딪치고, 큰소리가 나고, 얼굴을 찌푸리고, 인격을 무시하고, 잘못된 것은 모두 너 잘못이라고 몰아 부치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시면 성령께서 그곳을 떠나시기 때문에 그 가정은 머지않아 사단의 세력이 자리를 잡게 되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5;32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순종하면 성령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을 순종하여 삶의 현장에서 적용시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감으로 항상 성령 충만을 받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족 간에 사랑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고, 화평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시며 사랑의 본체십니다. 오늘본문 7,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 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 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께 속하여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가정을 작은 천국의 모델로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 외면하며 살아온 이웃과 정다운 사랑의 관계로 회복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 주님께서 머리되시는 갈릴리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며 뜻과 힘과 정성을 모아 기쁨으로 교회의 일에 동참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이 식어가는 로토루아의 교민사회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 시켜 나가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일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 아멘 ----


로토루아 갈릴리교회 초대목사 김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