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믿음
by 김진영목사님 | 17.03.24 09:09 | 1,032 hit



살아 있는 믿음


야고보서 2;14-20


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네가 하나님은 한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이 세상에는 많은 것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빨리 변하는 것은 문화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통신수단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휴대전화의 개발은 순식간에 전 세계에 보급되었습니다.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카메라와 동영상, 그리고 인터넷의 접속과 GPS 뿐만 아니라 위치 추적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컴퓨터가 일반화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보급은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한국의 인터넷 이용인구가 전체인구의 74%가 이미 넘어 섰다고 합니다. 인터넷 이용인구의76%가 거의 매일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식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먹 거리는 얼마나 다양하며 전문적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생활문화가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모습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나라가 변하고 인간이 변합니다. 언어와 풍속이 변하고 문화와 역사가 변합니다. 모든 것이 다 변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늘어나지도 않으며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발전하거나 퇴보하지도 않습니다. 변치 않는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요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하셨습니다. (요14;6)에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고 하신 말씀대로 진리 되시는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히13;8)절의 내용에는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 되시기 때문에 어제나 오늘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듣는 사람들에게 감화와 감동을 주시며 심령을 변화 시키고 있습니다. 길 되시는 주님께서는 뒤따르는 성도들을 천국에 도착 할 수 있도록 인도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속에는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 성령 충만 입니다. (엡5;18)에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성령충만 받기를 원하십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말 하는 것입니다. 성령감화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성령의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은 자신의 의지가 성령의 지배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동을 말 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감화를 받았습니다. 몸된 교회에서도 받고, 부흥집회에서 성령의 감화로 은혜도 받고, 목이 쉬도록 부르짖으며, 밤이 새도록 눈물의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으며 묵상도 합니다. 믿음이 참으로 좋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많지를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감화를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만이 살아있고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에 진리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의지와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가 없으며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삶인 이세상의 삶의 전부와 영원히 사는 천국의 삶까지,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모두 주님에게 전적으로 의지 할 때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께서 우리의 의지를 지배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살아있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살아 있는 믿음’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 드리며 함께 은혜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야고보서 전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냐? 행함이냐?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두고 성경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원은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한번 구원 받은 사람은 어떤 죄를 짓는다고 해도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험천만한 믿음이며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원을 위한 회개는 한번이면 됩니다. 그러나 성화를 위한 회개는 수시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1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하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아가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행함을 기준으로 남들을 정죄하게 되어 다시 율법주의에 빠지게되는 것입니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 즉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무엇을 강조했습니까? (본문14절)‘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는 믿음보다는 행함을 더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바울과 야고보 사이에 강조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 맞습니까? 만일 사도바울의 강조점인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면 야고보의 강조점인 행함이 틀린 것이 되며 만약 야고보의 강조점인 행함이 옳다고 한다면 사도바울의 강조점이 틀린 것이 될 것입니다. 성경66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일점일획도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바울의 강조점이나 야고보의 강조점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는 것입니다. 둘 다 옳은 말씀입니다. 믿음과 행함을 성령의 감동으로 조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22절)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믿음과 행함을 조화시켜 나갈 때 속사람과 겉 사람의 믿음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바울이 말하는 행함은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자기 의지에 의한 율법적인 행함과 불신자들의 행함을 말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선한 일을 많이 하면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며 막연하게 그것을 믿고 붙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름대로 행하는 선한행위를 지적한 것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이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중의 한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중의 하나이며 야고보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제2대 감독이었으며 28년간 감독의 사역을 잘 감당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초대 감독의 이름도 동일한 야고보였으며 사도요한의 동생이었습니다. 동명이인이 예루살렘교회의 초대와 2대의 감독사역을 감당했으며 두 감독모두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의 별명은 낙타무릎이었습니다. 항상 성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든지 그의 무릎은 낙타무릎처럼 살이 굳어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낙타무릎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낙타무릎이라는 별명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야고보는 감독으로써 오랫동안 예루살렘교회를 인도하면서 말만 많이 하고 행함이 없는 성도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들을 나무라며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따로 있고 행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믿음이 그의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본문18절)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고 했습니다. 믿음은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마음속에 있는 믿음이 행함으로 외면에 나타날 때에 비로소 보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기도가 되지 않아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가 없다고 하는 자매를 위해서 ‘기도의 문을 열어 주소서’라고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자매는 ‘아멘’으로 그 기도를 받아 드렸습니다. 아멘은 했으면서도 당사자가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아직 행함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자기 스스로 기도를 하는 행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믿음이 있음에도 아직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하면 어떻게 하나? 그러니까 기도하지 말아야겠다는 자기 의지가 성령의 감동을 막아 버리기 때문에 행위로 나타나지 않게되는 것입니다. 


기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은 그만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세리의 기도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같은 성전에서 같은 시간, 바리세인은 유창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어떤 기도를 하였습니까? (누가18;13)‘세리는 멀리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 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많은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세리는 자신의 의지를 꺾었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으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기도로 행함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까?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고 누가복음18;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기도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기도하지 않는다면 행함이 없는 믿음이며 죽은 믿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루 세끼 식사 때 잠간 기도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세리처럼 짧은 기도라고 해도 마음의 문을 열고 간절히 기도드리면 무엇보다도 성령의 감동과 지배를 가로막고 있는 자신의 의지를 꺾고 성령의 지배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행함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이며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는 속사람이 변화되어 겉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열매를 보아 그 나무의 상태를 알수 있게 됩니다. 열매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의지대로 선을 행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보이기위해서 다른 나무의 좋은 열매를 나뭇가지에 메달아 놓은 크리스마스 추리와 같은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아나니아 와 삽비라 부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몽땅 팔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러나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성령을 속이고 돈 얼마를 감추어 두었다가 저주를 받고 둘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자기들의 의지로 가로막고 자기들의 욕심대로 행함으로 성령의 감동을소멸시킨 것입니다. 오늘날 아나니아 와 삽비라 같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았으면서도 계속해서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속사람이 변화되어 변화된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에 의한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에 의한 행위로 나타나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변치않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 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아멘 --


로토루아 갈릴리 교회 초대목사 김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