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by 김진영목사님 | 17.12.27 02:25 | 901 hit




사무엘 하 12;1-15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 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매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삶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삶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엄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시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하셨나이다 하니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창세기 1;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영적인 모습으로써 영성과 도덕성, 그리고 인격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온전한 존재로써 자유의지로 살아 갈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영성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을 찾아 자신이 섬기며 의지 하고 보호받기를 원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종교성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종교성은 인간 스스로 신을 찾아 헤매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찾은 신을 섬기는 것이 종교이며, 인간이 섬기는 신의 모양을 만든 것이 우상입니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을 만들어 놓고, 자신을 돌봐주는 신으로 믿고 섬기는 것이 바로 이방종교입니다.


그러나 이방종교와는 정반대로 죄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는 모든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 해 주시기 위해서 사람에게 찾아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을 친히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자로 섬기며, 의지하고, 믿는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죄 때문에 끊어졌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가도록 사람을 친히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방종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 가지만 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가는 것이 아니라 죄에 빠져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무슨 행동부터  했습니까?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아담과 하와를 부르시며 찾아 오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직접 찾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죄와 절망의 자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모두가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고 숨기고자하는 인간도 버리지 않으시고 친히 찾아 오셔서 그 죄를 깨닫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오늘은 ‘사람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준비한 말씀을 전해 드리며 함께 은혜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 하 11장에는 다윗왕의 범죄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암몬과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궁중에 남아 있든 다윗왕은 잠시 영적 긴장이 풀려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한국의 슬라브 지붕처럼 평평한 왕궁의 지붕 위를 거닐다가 민가의 뒤뜰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밧세바를 보고 육신의 정욕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종에게 밧세바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그 결과 그 여인의 남편은 헷 사람 우리아 이며 압몬 과의 국경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군사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집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다윗은 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오게 하여 동침을 했으며 밧세바는 그로인해 잉태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간음죄를 숨기기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있는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소환하여 그의 아내인 밧세바와 동침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럽고 정직한 우리아는 군대장관 요압과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적들과 싸우고 있는데 어떻게 나 혼자 먹고 마시고 처와 함께 편안하게 잠자리를 할 수 있겠느냐고 그날 밤 자기 집에 가지도 않고 왕궁 문 앞에서 잠을 잤습니다. 결국 다윗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악한 영의 포로가 된 다윗은 무서운 계략을 꾸몄으며 군대장관인 요압에게 편지로 지시를 하였습니다. 요압은 전쟁터로 복귀한 우리아를 가장 위험한 전선으로 배치하여 죽임을 당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왕은 우리아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밧세바를 아내로 취하여 잉태한 아이를 출산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 했던 것입니다.


사무엘 하 11장의 끝부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7절 에 ‘그 장례를 마침에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나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신정국가의 왕으로써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잘 지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로움과 선과 사랑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나라를 통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나태해진 다윗은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십계명 중 우리아의 아내를 탐냄으로 네 이웃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밧세바와  잠자리를 같이함으로 간음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또한 밧세바가 잉태하자 그의 남편을 전선에서 소환하여 동침하게 함으로 자기와의 관계를 은폐하려고 거짓 증거의 죄를 짓게 되었으며,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계획적으로 가장 위험한 전선에 배치하여 전사를 당하게 함으로 살인죄까지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십계명 중 네 가지 계명을 어기는 무서운 죄를 지었으면서도 그의 범죄 행위를 깨닫지 못하고 사람과 하나님을 속이려고 했든 것입니다. 이렇게 죄에 깊이 빠져 들어가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친히 찾아오신 것입니다. 


본문 1절 전 반절에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짓고서도 그 죄를 숨기고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을 찾아가 비유를 통해서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본문 1절과 2절에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다’ 고 했습니다. 부한 자는 다윗이며 양과 소는 다윗의 많은 처와 첩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 전 반절에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는 내용에서 가난한자는 우리아 이며, 작은 암양 새끼 하나는 밧세바를 뜻하며, 그 외에 다른 여인이 없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3절 하 반절에는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라고 했습니다. 우리아와 밧세바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는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집을 찾아온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모세 오경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규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 부자와 가난한자가 소유한 양을 비유로 들어 말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비유가 자기의 죄를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정죄를 했습니다. 본문 5절과 6절에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고 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비유를 통해서 다윗의 죄를 지적해 주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일로만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말하고 있는 그 악한 부자는 율법에 따라 마땅히 죽임을 당해야 하며 빼앗아 간 양 새끼는 사 배로 갚아야 한다고 선고를 했습니다. 다윗의 그 선고는 과연 누구를 위한 선고였습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선고였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죄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남을 정죄하지는 않았습니까? 남을 정죄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정죄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스스로 지은 죄에 대해 자신이 받아야할 벌을 자기 스스로 선고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다른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엄격합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성입니다.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남들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서는 그럴 수가 있느냐고 원망을 합니다. 마태복음 7:3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고 하셨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다윗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본문 7절 말씀에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고, 다윗의 범죄를 담대하게 지적을 했습니다. 그리고 9절에 보면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담대하게 다윗의 죄를 밝혀 주었습니다. 만약 나단 선지자의 목숨을 건 담대한 지적이 없었다면 다윗은 성경 상에 악을 행한 왕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죽임을 당해야할 죄를 진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의 올바른 죄의 지적을 듣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시인 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훌륭한 점이며 본 받아야할 점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막강한 왕의 권력으로 나단을 그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었으며, 감옥에 가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의 죄를 시인했습니다. 본문 13 절에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지은 죄를 시인하는 사람은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은 죄를 변명하고 합리화 시키는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를 죄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회개를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지 않는 것 보다는 지은 죄를 회개 하는 것을 더 기쁘게 보십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담대한 지적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범죄 했음을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죄를 용서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성경에 기록된 왕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왕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행13;22,23절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친히 사람을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의인에게 뿐만 아니라 죄인에게도 찾아오십니다. 대개의 경우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찾아오십니다. 사자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다윗에게도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찾아 오셨습니다. 사자를 통해 다윗을 찾아오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찾아오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자는 목사나 장로, 권사, 집사 등 교회의 직분 자들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일수도 있으며, 혹은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혹은 거지의 모습으로, 혹은 지체아의 모습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전할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인격체가 아닌 고난이나, 시험이나, 질병이나, 환경 등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통해 인간을 찾아 오셔서 죄를 지적하여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은혜를 더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그의 심령은 죄로 인해 더욱 부패하여 영원한 멸망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나태할 때나, 영적으로 교만할 때도 하나님의 사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수 있도록 담대한 말씀을 나단 선지자에게 주시고, 죄를 범한 다윗을 찾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으로 죄를 지은 인간이 회개하고 구원받아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해주시고 섬길 수 있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모든 말씀은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로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의 문자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 66권으로 정리되어 성경책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초월한 어떠한 계시나 기적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시며 능력이시기 때문에 말씀과 더불어 사자를 통해 죄인을 찾아오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끝 까지 인도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다윗은 왕의 권좌에 앉아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자 잠시 영적 긴장이 풀려 영적인 안목이 흐려졌던 것입니다. 그로인해 자신이 지은 죄를 죄로 알지 못함으로 죄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의 죄를 단호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엄청난 죄를 깨닫고 죄를 범했음을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든 것입니다.  우리는 매사가 자기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만사형통한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만사형통 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죄를 범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도 국력이 커지고 전쟁마다 승리를 거두어 국토를 확장하여 열강 중에서도 강국이 되는 등 만사가 형통하게 이루어짐으로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사가 형통하게 이루어질 때 자신의 믿음을 잘 관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워 나가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구원 얻은 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도 타고난 죄의 성품과, 악한 영으로 인해 죄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과 더불어 우리를 찾아 오셔서 사람을 통해서나 혹은 상황을 통해서 권면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깨달아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다시 돌아가 순종의 자세가 바로 서야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즉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죄진 자를 부르시며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자신의 죄를 즉시 시인하고, 회개하여, 죄의 유혹에서 과감하게 돌아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주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기름을 준비한 삶이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 - 아  멘 - -

로토루아 갈릴리 교회 초대목사 김진영